섹스의 속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둘 것이 있다. 섹스에서 ‘빠르다’와 ‘느리다’는 다소 복합적인 의미로 쓰인다. 피부를 쓰다듬는 손, 유두를 애무하는 혀, 삽입 후의 피스톤 운동 등 특정한 행위의 속도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을 나누는 전체 시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BPM(Beats Per Minute, 분당 연주되는 비트)이면서 앨범 전체의 플레잉 타임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빠르고 짧게 끝내는 섹스와 느리고 오래 하는 섹스 중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이것 역시 뚜렷한 정답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기분과 신체 컨디션에 따라 더 좋다고 느끼는 게 달라진다. 결국 섹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결론은 하나의 모범답안으로 압축된다. 섹스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섹스는 몸의 대화라는 것. 섹스는 상대적이라는 것. 그날의 기분, 그날의 컨디션, 그날 우리 둘의 무드, 그날의 욕망, 그날따라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속도를 서로 말로, 혹은 무언의 대화로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와 나의 파트너에게 가장 즐거운 ‘섹스의 속도’, 그것을 차근차근 발견해 나가는 아주 구체적이고 유용한 방법.
발단
FAST&SLOW 나의 쾌락 포인트 찾기
섹스고 오르가슴이고 뭐고, 일단 뭐라도 하려면 자기 몸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 몸의 어느 지점을 자극하면 기분이 좋고 어느 지점을 애무하면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는지, 어느 부분을 간질여야 하고 어느 부분을 세게 움켜쥐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상대에게 원하는 걸 요구할 수도 있다. 의외로 애인과 일상적으로 섹스를 하는 여자 중 상당수가 자기 몸에 무지한 채 남자가 이끄는 대로 수동적인 섹스를 하고 있다. 오르가슴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거나 섹스가 즐겁지 않은 건 많은 경우 자신의 몸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걸출한 파트너를 만나 전에는 몰랐던 오르가슴의 세계에 번쩍 눈을 뜬다면야 좋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손으로’ 직접 하는 것. 자위를 하면서 자신의 성감대를 하나둘 발견해보기를 권한다. 나는 어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클리토리스를 어떤 속도와 강도로 애무할 때 가장 큰 쾌감이 느껴지는지 등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자. 이렇게 ‘쾌락 포인트’를 연마(?)해둬야 침대에만 올라가면 헬렌 켈러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 남자를 만났을 때에도 이 무지몽매한 자의 손을 당신의 성감대로 차근차근 인도하는 설리번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전개
SLOW 먼저 예열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내 손을 움켜쥐었을 때, 나의 그곳은 이미 뜨거운 욕망으로 젖어들었다….” 살다보면 드물게 할리퀸 로맨스 같은 날도 있(을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전희고 뭐고 허겁지겁 바로 삽입부터 하고는 5분 만에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짜릿한 날도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은 섹스하기 전 몸을 후끈하게 예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남자가 발기를 하는 것처럼 여자도 흥분하면 클리토리스가 부풀어오른다. 클리토리스가 평소보다 커진 상태에서 삽입을 하면 남자가 피스톤 운동을 할 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게 되고, 그러면 오르가슴에 도달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 파트너가 전희에 영 서툴다면 당신이 직접 자신의 성감대를 구석구석 만지며 서서히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것은 지켜보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 모두에게 매우 자극적이고 야릇한 전희이기도 한데, 이때 클리토리스를 원하는 방식으로 자극하며 파트너에게 은근한 시청각 교육을 해준다. 빠르고 가볍게, 혹은 느리고 강하게. 평소 갈고 닦았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드디어 왔다!
SLOW 삽입 직후엔 느리게
드디어 삽입을 한 파트너가 마치 듀라셀 토끼처럼 광속으로 피스톤 운동을 할 기세라면 “조금만 천천히” “더 깊이 넣어줘” 같은 말로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이때 남자의 골반을 잡고 허리를 당기듯 들어올리며 그가 천천히 피스톤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남자의 고환이 당신의 항문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들어 느리고 깊게 삽입을 한 후 천천히 골반으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면 귀두가 질 안쪽까지 자극하면서 더욱 쾌감이 커진다.
FAST-SLOWER 8번은 빠르게, 2번은 느리게
이제 체위를 한 번쯤 바꿀 때가 되었다. 처음의 남성 상위 체위에서 조금만 바꾸면 된다. 남자가 당신의 굽힌 무릎이 거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바짝 밀어올린 후 깊이 삽입하는 체위. 여기서부터는 속도를 조금 올려 피스톤 운동을 10회 한다면 대략 8번 정도는 빠르고 얕게, 2번 정도는 느리고 깊숙이 삽입하면서 클리토리스와 질 안쪽이 골고루 자극되도록 한다.
FAST-FASTER 절정을 향해 빠르게 더 빠르게
안타깝게도(?)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남자들은 페니스의 사이즈도 평범하다. 그동안 파트너의 아담한 페니스가 늘 당신의 질 입구에서만 서성이다 끝나는 게 서운했다면, 바야흐로 이 체위를 시도할 때다. 먼저 여자가 주변의 책상이나 침대 위에 ㄱ자로 엎드린다. 이때 목은 낮게 숙이고 엉덩이를 높이 들어 질 입구가 남자를 향하도록 한다. 남자가 뒤쪽에서 여자의 배를 껴안듯이 몸을 밀착시키며 깊이 삽입한 후 피스톤 운동의 속도를 점점 올린다.
위기
SLOW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피스톤 운동을 하는 남자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사정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이보시오, 멈추시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잠시 그를 진정시키며 사정 타이밍을 늦춰본다. 삽입 섹스 중이었다면 천천히 멈추고 오럴 섹스로 전환한다. 사정이 임박한 페니스는 귀두가 더욱 부풀어 오르고 약간 수축된 상태로 위로 당겨진 듯한 모양새. 이 순간엔 페니스를 강하게 빨기보다는 귀두 부분을 가볍게 핥는 게 안전하다. 귀두를 꼭 누르거나 위로 올라붙은 페니스를 손가락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조금 아래쪽으로 내리는 것도 사정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항문과 고환 사이 옴폭 들어간 지점을 지그시 누르는 것. 전립선을 눌러 사정을 근본적으로 지연시킨다는 원리다.
절정
SLOW-FASTER-SLOW-FASTER 절정을 향한 속도 밀당
연애에 밀당 따위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지만, 섹스의 절정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밀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절정 직전에서 멈추고, 다시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가 직전에서 또 멈추고’를 반복하는 것이 핵심.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절정에 도달하므로 사정 직전의 상태에서 삽입을 풀고 키스를 나누거나 가슴을 애무하며 잠시 열기를 식힌다. 그런 다음 다시 삽입하고 피스톤 운동에 박차를 가하다가 사정 직전의 상태에서 다시 삽입을 풀고 남자가 여자의 클리토리스를 애무한다. 사정하는 순간의 흥분이 10이라면 7시 정도에 도달했을 때 페이스를 늦춘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세 차례 정도 반복하면 남녀의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맞아 들어가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결말
SLOW DOWN 느리게 하기
사정을 한 남자는 순식간에 기분 좋은 아기 동물처럼 나른하고 온순해진다. 침과 체액이 묻은 서로의 몸을 닦아주고 포근한 이불 안에서 꼭 껴안은 채 누워 있는 그 순간이 섹스보다 더 좋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 남자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부드럽게 긁듯이 쓰다듬거나 눈꺼풀, 입술, 턱 아랫부분, 귓불, 귀 아래 목, 쇄골 중앙 등 피부가 얇고 예민한 부위에 천천히 입을 맞추고 배꼽 주변을 살살 쓸어주는 것도 좋다. ‘좋다’라고 쓴 이유는 가끔 이 단계에서 느릿느릿 서로를 만지고 쓰다듬는 손에 차츰 속도가 붙으면서 곧장 두 번째 섹스로 이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타임아웃이 없는 게임의 묘미’는 단지 야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