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사랑(약간 스압) 크사


채털리 부인의 사랑(약간 스압) 크사

새사랑 0 1840

부모님 집에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있다. 예전에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여하튼 내가 글의 흐름이란 것을 아는 나이일 때부터 이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무려 세로쓰기에, 한자어도 많아서 여러 가지 장벽이 높았지만, 채털리 부인이 사냥꾼지기와 나눈 잠자리 장면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마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오르가슴이란 이런 것’이라고 채털리 부인을 읽으며 감을 잡았다. 소설 채털리 부인에서 묘사한 오르가슴의 원문을 직독직해하면 다음과 같다.

  

'그녀의 세포조직과 의식을 빙빙 돌며 통과하는 감각들의 순수하고 깊은 소용돌이. 그녀가 하나의 완벽한 동심원의 액체가 되는 느낌'. 

 

이 표현이 한동안 머리에 똬리를 트는 바람에 내 섹스 라이프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휘청하기도 했다. 섹스를 시작하고 몇 번을 더 해봐도 심신이 회오리바람에 휩싸이는, 채털리 부인이 말한 그런 오르가슴을 만나지 못했다. 남자의 섹스는 발기하면 오르가슴으로 이어지는데, 왜 나는 ‘깊은 소용돌이’에 빠지지 못하는 걸까.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걸.’ 마음의 소리가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왜 스스로 클리토리스를 만져서 황홀경에 오를 때의 그 붕 뜨는 느낌이 남자랑 할 때는 없을까', '너무 일찍 포르노그래피에 노출된 부작용일까', '크고 힘찬 성기니 무용수 허벅지 같은 요소들은 사실 나의 섹스 라이프에 별로 영향력이 없는 아이들인가'하고 좌절했다. 혼자 하면 어느 때고, 얼마든지 오르가슴에 확실히 오르는데, 남자랑 잠자리를 가지면 자위만큼의 풍만한 절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자를 만날 때 얼굴은 보지 않아요'라는 말만큼이나 '오르가슴이 섹스의 전부는 아니잖아요'라는 말은 울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어떻게 그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딴 남자가 생겼어?’ ‘밝히는 X.’

내가 미리 상상해본 남자친구의 답변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내 속마음을 남자친구와 상담할 수는 없었다. 헤어질 생각이라면 몰라도.

그래서 종이에 적었다.

부족한 잠자리에 대한 불만 사항을 참다못해 굴러다니던 연습장에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1. 섹스에만 집중했나?

집중의 단계를 ‘매우 그렇다/그렇다/아니다’, 로 나누었을 때 ‘그렇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가 내 양쪽 발목을 하늘 높이 올릴 때 배가 온전히 드러나서 질보다 복부에 더 힘을 주려고 의식했던 적은 있지만.

 

2. 남자친구는 오르가슴을 느꼈나?

패트릭 마버의 희곡 (지난번 칼럼에 이어 연속등판. 여러모로 재미있는 작품!)에서 댄과 안나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안나가 가끔 거짓 오르가슴을 꾸미기도 한다고 말한다;

 

안나 "니가 나를 절정에 오르게 만들지는 않아. 내가 절정에 오르는 거지..."

댄      "너는 나를 오르가슴에 오르게 만들어".

안나 "너는 남자야, 이의 요정이 너에게 윙크해도 너는 절정에 오를 거야".

 

물론 마버의 희곡을 읽기 전에도 남자의 오르가슴을 걱정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긴, 남자의 오르가슴을 걱정하는 여자라니.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지구상에 그런 여자가 있을 리가...남자는 잠자리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한다. 남자가 사정을 하고, 뒤이어 자리에 누웠을 때 기분이 좋아 보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섹스를 하고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세상에 있을 수 없다는 엄청난 자신감이 있다.

 

3. 그렇다면 지난 섹스에서 불만스러운 점은?

좋지만 아주 좋은 느낌은 아닌 것? 섹스 포지션도 네 번이나 바꾸며 변화를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똑바로 누워 있을 때는 '가슴을 좀 더 세게 비틀거나 만져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피스톤 운동 시에는 그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 주변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그곳을 애무해주길 바랐다. 그러다보니 눈앞에 있는 남자가 ‘베스트’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여기까지 쓰다가 나도 모르게 책상을 손바닥으로 시원하게 내리쳤다. 그래, 이거였어. 내 오르가슴의 문제는 남자가 클리토리스를 만진 횟수(물론 중요하지만!)도, 섹스 포지션의 변화도 아니었다. 내가 처음부터 상대방을 최고의 파트너라고 믿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우주에서 눈앞의 사람이 ‘그 짓’을 제일로 잘한다고 믿으면 됩니다.”

 

위는 블로그에서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하던 항상 오르가슴을 느끼는 팁은 없냐는 어떤 분의 쪽지를 받고 답장을 한 내용이다. 혼자 ‘진짜’ 오르가슴이란 무얼까 오랜 실험과 고민 끝에 나온 답이다. 오르가슴은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할 숙제로, 반드시 클리어해야 할 목표로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과정을 추구하는 재미가 있어야 원하는 결과도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을...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또 과정을 즐기는 것만큼이나 ‘그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오르가슴을 방해하는 가장 흔한 실수는 오르가슴이 오려는데 박자를 바꾸는 것이다. 오르가슴에 올라가기 직전에는 이미 모든 것이 적절한 상태다. 남자의 성기 크기도, 힘도, 스피드도 오르가슴 곡선에 맞아 떨어지니까 조금만 더 그 상태를 유지하면 정상에 도달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여자친구가 정상에 오르려는 기미가 보이면 좀 더 늦추고 싶은 마음이 남자에게 스멀스멀 올라오나 보다. 나 역시 이 섹스 시간의 노예가 된 남자들 때문에 가파르게 오르던 오르가슴 곡선이 어이없이 꺾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섹스를 하면서도 클리토리스를 통한 자위를 그리워(?)한 적도 있다. 어차피 자위가 오르가슴에 오르는 데 더 빠르고, 확실히 오르가슴에 오르는데 무엇 때문에 힘들게 허리가 뻐근하도록 피스톤 운동을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파트너와의 섹스를 통해 오르가슴에 오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다. 서로의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그렇지만 혼자 오르가슴에 오르면 골반 아래만 묵직하나 두 사람의 침실 파장이 맞으면 가슴이 뻐근해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어떤 여성들은 판타지만으로도 오르가슴에 오른다고 한다. 사실 정신을 빠지게 할 정도로 좋은 키스만으로도 여성은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다. 오르가슴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특수해서, 뭐라고 딱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당신이 느끼는 게 오르가슴이라면, 오르가슴이 맞다. 그러니 채털리 부인의 ‘소용돌이’ 같은, 남의 표현을 떠올리며 이 느낌이 맞을까 아닐까 따질 필요는 없다.

 

캐나다에서 남자에게 차이고 매일 죽상으로 어학원 수업을 들었을 때다. 어느 날, 작문 담당인 선생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 있냐? 얼굴이 왜 그래?’라고 물어보기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선생이 쿨하게 “There‘s lots of good fish in the sea."라고 말하며 위로해주었다. 나는 속으로 작문 선생은 위로의 말도 문학 같네, 라고 멋도 모르고 감탄했다. 그 말 한마디에 뿅 가서 나중에 작문 선생이랑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선생의 오리지널이 아닌 채털리 부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었다. 이래서 좋은 소설은 원서로 다시 읽어봐야 하나 보다.

 

“There's lots of good fish in the sea. 들어본 적 있어?”

남자를 배웅하다 말고 문득 생각이 나서 질문을 던졌다.

 

“응. 채털리 부인에 나오는 말이잖아.”

“헉.”

 

사이언스 잡지만 읽는 줄 알았더니, 배신자?! 갑자기 이 남자가 백만 년은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너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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