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잔류' 與는 '험지' 野는 '탄핵' 요구…딜레마 빠진 한동훈
총선 6개월 전 날아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소식은 결코 함께 웃을 수 없는 두 인물의 표정을 명확히 갈라놓았다. 이재명 대표가 벼랑 끝에서 되살아나면서, 그 반작용은 고스란히 그와 대척점에 서 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로 향했다. 정치권에선 뼈 아픈 타격을 입은 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논쟁이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한 장관 탄핵을 외치는 가운데, 여권 내에선 이른바 '한동훈 활용법'을 둘러싼 동상이몽이 벌어지고 있다.
9월27일 새벽 법원의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난 후 이날 오전 한 장관은 덤덤한 표정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며, 기각되었다고 죄가 없는 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힌 그는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사실상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당사자의 의중과 무관하게 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있다. 꾸준히 한 장관 총선 차출설이 떠돌던 여권에선 조금씩 그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때마침 추석 연휴를 전후로 용산 대통령실 등 총선 모드에 돌입한 데다, 수도권 위기론이 지속되고 있어 한 장관의 역할론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는 것이다.
"1석 이상 역할 해줘야" "이재명 수사 아직 안 끝나"
국민의힘 안팎에선 한 장관의 총선 출마 결심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을 대변할 인물이 여권 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한 장관이야말로 수도권 바람몰이를 할 수 있는 '얼굴'이란 평가다. 이러한 요구에는 김기현 지도부의 약한 존재감도 한 몫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여권 안팎에선 야당을 상대하는 한 장관 한 명의 역할이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역할보다 크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번 기각 결정 이전까지 김기현 대표 체제가 총선 전 와해될 경우 한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 또는 총선을 책임질 선거대책본부장에 앉힐 수 있다는 이야기도 새어나왔다. 이러한 평가로 인해 일각에선 김 대표가 한 장관의 부상을 상당히 견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한 장관의 총선 출마와 당선 필요성은 강조하면서도, 그가 서울 강남‧송파 등 여권 텃밭이 아닌 마포 등 상대적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한 장관 정도의 '스타'라면 단순히 한 석 당선 이상의 역할을 해줘야 할뿐더러, 그래야만 대권주자로서 정치적 몸값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한 장관의 정치적 위상 회복 방안으로 "국민의힘이 당선되기 어려운 곳에서 출사표를 던져 그곳에서 성공해 돌아오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으로서 강력한 (야당) 후보와 한번 붙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주문했다.
하지만 한 장관 활용법에 대한 용산의 기류는 여의도와 다소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취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 장관의 사퇴와 총선 차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 우세하다. 수도권 위기론을 해소하기 위해 한 장관을 출마시키는 방향도 고심했지만, 그가 내각에 남아 국정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기울었다는 전언이다.
그 이유로는 한 장관이 법무부 수장으로서 이재명 대표 관련한 수사 및 재판 대응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법원에서 구속영장 기각을 결정했지만 아직 이 대표 관련 사법 일정이 끝난 게 아니다"라며 "따라서 한 장관이 지금 자리에서 검찰을 방어하며 소위 '이재명 사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길 대통령은 바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싸고 용산과 여의도가 의견을 달리 하는 가운데, 그간 총선 출마에 손사래 쳐 온 한 장관이 연말 전후 최종적으로 어떤 결단을 내릴지 계속해서 관심이 쏠릴 예정이다.
민주, 한동훈 탄핵 추진해 출마 차단? 역풍 우려도
여권 내 한 장관을 둘러싼 온도차가 나타나는 가운데, 민주당에선 이번 기회에 한 장관의 힘을 빼기 위한 행보에 나서고 있다. 기각 직후 '한동훈 책임론'을 전면에 내세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한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고 탄핵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동안 한 장관이 이 대표의 각종 혐의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해온 데다, 앞서 시행령을 개정해 법을 우회했다는 점 등을 총체적으로 문제 삼을 예정이다. 한 장관과의 대결 구도에서 모처럼 잡은 주도권을 계속해서 끌고 가겠다는 게 민주당의 생각이다.
민주당의 한 장관 탄핵 추진에는 내년 총선까지 그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셈법도 맞물려 있다. 만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 장관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한 장관의 직무는 즉각 정지된다. 이 경우 출근길 또는 국회에서 그간 한 장관이 야당을 향해 쏟아냈던 메시지부터 차단된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최종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도 없다. 총선 출마를 위해선 내년 1월11일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그 전에 헌재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그의 총선 출마가 막혀버린다는 의미다. 이 경우 여권은 한 장관 활용법에 대한 옵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다만 지금 분위기에 따라 탄핵을 추진했다가는 자칫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민주당 내 제기된다. 앞서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선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지만 헌재의 만장일치 기각 결정을 맞은 바 있다. 이번에도 헌재 탄핵 기각 결정을 받을 경우 차기 대선 전 되레 한 장관의 몸집만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