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가족 개인정보' 52차례나 무단열람 공무원…희한한 '무죄' 이유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정보 시스템을 통해 남자친구 가족의 개인정보를 열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 통념으로는 비판받을 수 있는 행위이지만, 처벌 조항의 한계로 인해 유죄가 입증되지 않은 이유에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4단독(오흥록 판사)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0대·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라는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A씨는 지난해 4~6월 해당 사이트를 통해 교제하던 남자친구 B씨와 B씨의 아버지, B씨의 동생 등 3명에 대한 개인정보를 총 52차례에 걸쳐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복지 수당 수혜자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이다. 전국구 조회가 가능하며 이름을 입력하면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소득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사회복지 관련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이어서 개인정보 열람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열람 과정에서 B씨 가족에 대한 동의는 없었고, B씨가 민원을 제기하면서 무단 열람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이로 인해 관할 구청에선 A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아버지 동의와 정당한 절차 없이 정보를 습득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 1호, 제72조 2호를 어긴 것으로 봤다.
이들 조항에 따르면 거짓이나 부정한 수단·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민원인 요청 없이 무단 열람하는 행위는 권한 남용으로 볼 수 있으나, 검찰이 적용한 법령 조항으로는 A씨를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열람 과정에서 권한 남용뿐만 아니라 부정한 수단·방법을 이용한 행위까지 인정돼야 유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한 개인정보 열람 권한이 있는 A씨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정보를 얻어냈기 때문에 부정한 수단·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개인정보를 열람할 때마다 열람 사유를 입력한다거나 상급자 결재를 받는 절차가 따로 없는 점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A씨의 사례처럼 부정한 방법이 아닌 부정한 목적으로 인한 정보 열람을 처벌하기 위해선 개인정보 취득이 아닌 '제공받은 행위'가 입증돼야 한다. 취득은 스스로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고, 제공은 타인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행위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허용된 권한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정보를 유출, 위조, 이용할 때도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잘못한 점이 없진 않지만, 검찰이 문제 삼은 조항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권한을 넘어 정보를 취득하긴 했지만, 보안 절차를 무력화하거나 허위 사유를 입력한 사실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