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털
너무 없는 거 아니야”라는 남편의 말에 충격을 받고 내원한 무모증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젊을 때부터 음모에 숱이 별로 없어서 고민이었지만 그리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두 아이 출산 후 나이가 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숱이 빠지더니 일부분은 아예 휑해졌단다. 그래서 남들 다 가는 찜질방이나 온천 한 번 못 가봤지만 그래도 특별히 신경을 쓰진 않았는데 잠자리에서 너무 쉽게 내뱉는 남편의 한마디는 견디기 힘들었단다.
무모증(atrichia pubis), 빈모증(hypotrichosis of pubis)이란 음부에 털이 거의 없거나 상당히 빈약한 경우를 말한다. 서구인에 비해 동양인에게 많이 나타나며, 우리나라 여성의 약 12%가 무모증이나 빈모증이라고 한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주로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호르몬의 영향, 질병, 영양실조,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고 때로는 출산이나 수술 후에 생기기도 한다.
여성의 음모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12~14세에 발모하기 시작하여 17세가 되면 완전히 자란다. 음모의 역할은 머리털이나 겨드랑이 털과 마찬가지로 땀의 증발을 촉진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성적인 면에서는 맘에 드는 이성에게 가임능력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음모에서 나는 냄새는 흥분을 북돋기도 한다. 그리고 삽입성교 시에는 서로의 촉감을 전해주고 음부의 마찰을 줄여주는 쿠션역할도 한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가 클 뿐 실제로는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이나 성생활에서의 역할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사람이 겪는 고초는 엄청나다.
또 은밀한 부위이다 보니 숨기기에만 급급해서 정확한 정보의 공유나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음부에 털이 없는 여자와 성관계를 하면 3년 재수가 없다’ ‘음모가 많은 여성이 성감도 좋다’ 등의 근거 없는 속설 때문에 무모증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스스로 느끼는 수치심과 열등감 때문에 섹스를 거부하거나 불감증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심지어 무모증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거나 결혼을 포기하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일 뿐이다. 서양에서는 성적 매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모를 하거나 뽑는 경우도 있다. 또한 남자 중에는 음모가 없는 여자를 더 섹시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먼 서양이 아닌 가까운 중국, 일본만 보더라도 무모증 여성을 터부시하는 문화는 아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무모증 여성들이 홀대를 받고 있다.
무모증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나 그릇된 관념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모증 여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수치심과 열등감을 지워버리기가 힘들다면 음모패드(음모가발)를 사용하거나 의사와 상의해서 머리털을 음부에 심는 식모수술을 받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