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외 사정...1
친구 이름을 내키는 대로 부르는 건 힙합 정신이다. 불만을 토로하는 거다. 물론 스스로 계속 이름을 바꾸는 힙합퍼도 있다. 퍼프 대디였다가 피 디디였다가 말이다. 여하튼 내 이름이 균형이 맞지 않다며 성과 이름 중간 글자만 붙여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한 번도 이름의 균형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계속 그 애칭이 불리고,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이름이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한 친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영역을 맞닥뜨렸을 때 상대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저도 모르게 동조한다. R이란 남자를 만나고 첫 섹스 직전이었다.
“나는 한 번도 콘돔을 써본 적이 없어.”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해?”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났지만 도리어 차분하게 말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했다. 그는 픽 웃더니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콘돔 없이 섹스만 잘 했다며 믿으란다.
“나란 남자는 믿지 마. 근데 내 아래쪽은 믿어도 돼.”
자신의 사정 조절 능력이 오차 범위 0.0001% 명품 스위스제 시계의 타이밍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부심이 대단했다. 게다가 스스로 나쁜 남자라고 딱 까발리기까지. 나는 약혼자도 있어, 라는 ‘폭탄’을 침대에서 맞았다. 이미 우린 옷을 다 벗고 있었다. 가족 드라마의 ‘캔디’ 같은 야무진 여자라면 사리에 맞는 일장 연설 후에 남자를 밀어냈을 테지. 하지만 나는 순간의 욕망에 굴복했다. 어차피 오래 만날 사이도 아닌데, 몇 번은 안전할 거야, 하고 자기기만을 하면서 R과 잠자리를 가졌다.
즐거운 순간은 금세 지나가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안 그래도 불규칙한 생리주기가 콘돔을 쓰지 않는 남자로 인한 스트레스 덕에 예측불가능이었다. 피임약을 먹을 시점을 놓치는 동안 몇 번이나 더 그와 섹스를 했다. 무엇보다 남자의 사정 타이밍 따위에 ‘미래’를 건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았다. 정확히 두 달 반이 지나서야 생리가 돌아왔고, 바로 그 남자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