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섹스
요사이 만나는 사람마다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한다. 연일 터져나오는 경제위기 뉴스와 연예인 자살소식 그리고 유해 먹을거리 기사 등 사회적 불안요소가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을이라는 계절도 한몫한다. 가을에 몸과 마음이 착잡한 이유는 쌀쌀한 날씨와 떨어지는 낙엽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줄어든 일조량 때문이다. 일조량이 감소하면 뇌 전달물질인 멜라토닌 분비가 줄고 그에 따라 기분도 우울하게 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은 아니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과 함께 의욕을 상실하고 무력감, 고립감, 허무감 등이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이것은 육체적, 심리적, 유전적, 사회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뇌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이상을 초래해 생긴다. 식욕변화, 흥미상실, 수면장애, 피로감 등이 증상으로 흔히 나타난다. 심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흐려지며 삶의 의욕도 잃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가 힘들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
성생활에도 문제가 생긴다. 성욕감소나 흥분장애 그리고 오르가슴장애 등 성기능장애가 나타난다. 우울증으로 인한 성기능장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많은데, 그 이유는 우울증이 여성에게 2 ~ 3배 정도 많이 발병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울증이 있는 여성이 출산을 하거나 폐경기를 맞게 되면 우울증이 더 악화되고 성기능장애도 심해진다. 성욕이 감소하여 급기야 섹스리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우울증으로 인해 오히려 성욕이 증가되는 사람도 있다. “마누라가 매일 밤마다 섹스를 요구하니 감당을 못 하겠소. 어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하며 부부가 내원한 적이 있다. 부인은 7년 전부터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다가 2년 전부터는 중단했다고 한다. 이유가 잠자리만 하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잠자리를 하지 않으면 가슴에서 응어리진 것이 북받쳐 견디기 힘들고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인의 속사정을 아는 남편은 매번 요구에 응해주었지만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상담을 한 결과 부인의 과도한 성행위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우울증뿐만 아니라 뇌의 측두엽이나 전두엽에 종양이 있는 경우에도 과도한 성욕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외도하는 배우자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도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강박적인 섹스나 자위행위에 몰두하게 된다. 또 성교의 횟수를 늘리거나 여러 번 오르가슴에 도달했는 데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계적인 성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이런 성행위는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면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또 성행위를 하게 되고, 결국 악순환이 계속된다.
섹스가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좋은 성생활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숙면을 취하게 한다. 하지만 섹스로만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것은 곤란하다. 도리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배우자가 조절되지 않는 강한 성욕을 보인다면 우울증이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