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과 섹스...1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이란 영화를 감상했다. 여주인공이 여주인공 친구 ‘그곳’을 슬쩍 보더니 하는 말이 대박이다: 그거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야? 야생풀숲처럼 무성한 음모를 좀 다듬으라며, 연애 안 하는 여자 티 내냐며 타박하는 대사였다. 영화를 보면서 박장대소하고 나선 비행기 화장실에서 슬쩍 내 아래 ‘풀숲’을 확인해 본 것은 팩트.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야생풀숲’ 같은 털은 독일 친구 E양의 체모다. 어느 국립공원 호숫가에 같이 수영을 하러 갔는데,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그녀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붉은 머리칼의 그녀는 겨드랑이도, 음모도 붉은색이더라. 더 놀라운 건, 그녀가 수영을 하러 오면서 수북한 겨드랑이 털과 음모를 다듬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 나도 체모를 내버려둔 경험이 있어 그때 그녀에게 딱히 뭐라고 말을 건네진 않았다. 겨드랑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수영장으로 엠티를 간 적이 있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인데, 뒤늦게 체모가 신경 쓰여 내내 차렷 자세를 유지하다 수구를 할 때 ‘마이 볼!’을 외치며 나도 모르게 팔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 아차, 하고 팔을 급하게 내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수영장에서 다 놀고 나오는데, 한 동기 남자애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는 여자도 겨드랑이에 털이 나는 줄은 몰랐어...’라고 수줍게 말을 건네는 거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체모, 특히 겨드랑이가 조금이라도 검어질 기미가 보이면 빛의 속도로 관리를 한다. 여하튼 호숫가에서 독일 친구가 팔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물에 젖은 붉은 겨드랑이 털이 여름 햇살을 받아 수초처럼 반짝이는 거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그냥 수영이고 나발이고 가만히 앉아서 털 구경만 하고 싶다는, 변태 같은 생각을 잠깐 했다. 다행히도(?) 그녀의 원피스 수영복은 사타구니가 많이 파이지 않은 스타일이라 음모가 삐져나오는 일은 없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