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잡힌 ‘칼부림 예고’ 경찰 사칭범, 블라인드 색출 가능?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경찰 직원을 사칭해 살인예고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 30대 회사원이 범행 하루 만에 붙잡히면서 그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기준 가입자수 800만명을 돌파한 블라인드는 ‘철저한 익명성’으로 호응을 얻었는데, 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회사원 A씨는 지난 21일 오전 블라인드 게시판에 경찰 직원 계정으로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는 게시물을 쓴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다음 날인 22일 오전 8시 32분쯤 서울 시내 주거지 인근에서 긴급체포 됐다.
이후 블라인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익명성을 보장한다더니, 색출 가능한 것이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블라인드 측은 그간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적‧정책적 장치를 철저히 준비해 뒀다”고 홍보했다. 직장인임을 판별할 수 있는 정보로 가입 시 회사 이메일 계정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해당 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복합변수로 암호화해 각종 보안장비에 의해 안전하게 보관된다고 했다. 관리자를 포함한 누구라도 입력 당시의 이메일을 암호화하기 전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블라인드 측의 설명이다.
또한 암호화된 이메일 정보와 서비스 이용에 필요한 계정 정보는 분리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기 때문에 계정 정보 만으로 어떤 이메일의 주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했다. 블라인드 측은 “이 때문에 비밀번호 찾기, 이메일 소유자의 이용 기록 열람 요청 등의 서비스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는 어떻게 경찰이 A씨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경찰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방법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A씨가 이전에 카카오톡 오픈채팅 주소를 넣은 글을 게시했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A씨는 칼부림 글 이전에 “누드사진 찍어보고 싶은 훈남 경찰관이다” “수치심 받는 게 좋다” “수고비 많이 주겠다” 등의 글을 올렸다. “누드 사진 찍어줄 누나 있을까”라며 오픈채팅 주소를 넣은 글도 게시했다.
과거 비슷한 사안에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글쓴이는 특정됐으나, 블라인드 글쓴이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직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반대 시위 하나도 안 들림. 개꿀”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와 공분을 샀다. LH 감사실은 내부 감사 과정에서 입사 2년차 직원이 해당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해당 직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오픈채팅방 대화방 내역을 지우고, 카카오톡 앱 자체를 삭제했다. 그러나 감사실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했고, 뒤늦게 해당 직원은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인정했다.
반면 블라인드에 LH 직원 계정으로 “꼬우면 이직하든가”라는 글을 남긴 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게시자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경찰은 미국 블라인드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보내 해당 글이 작성된 IP 주소와 아이디 등 참고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블라인드 측은 확인해줄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블라인드의 속성상 회사가 개인 정보 자체를 갖고 있지 않은 구조라며 미국 수사기관 요청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A씨는 24일 구속 수감됐다. 그는 “블라인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려고 글을 작성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과거 다른 이용자와 욕설 댓글 문제로 갈등을 겪어 삭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블라인드에 불만을 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경찰 계정을 어떻게 얻었는지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다. A씨는 경찰관으로 근무한 적 없으며 가족 중에도 전‧현직 경찰 직원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A씨가 ‘경찰청’으로 직장이 표시될 줄 알면서도 살인예고 글을 올린 데 대해 형법상 공무원자격사칭이나 경범죄처벌법상 공무원사칭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